외면하는 축제: 세계청년회의 역설

피해자를 만드는 세계청년대회

세계청년대회는 신앙의 결속을 다지고 청년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는 목적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행사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성 학대 문제와 이를 둘러싼 교회의 미온적인 대응을 감안할 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행사를 강행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행사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성 학대 문제로 신뢰 위기

포르투갈 가톨릭 교회는 최근 수십 년간 성직자들에 의한 성 학대 문제와 그 조직적인 은폐로 인해 심각한 신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20년까지 포르투갈에서 최소 4,815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어린 시절 성직자들에 의해 학대당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오랜 시간 동안 교회의 침묵과 무책임한 태도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가해자로 지목된 성직자들의 정직(停職)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며, 배상금 지급도 법적 판결을 기다리겠다며 지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피해자를 기리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으로 추진했던 기림비 건립 계획마저 최근 백지화되면서, 교회가 여전히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행사,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청년대회와 같은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서 교회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데,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은 그들에게 위선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피해자 지지 단체는 리스본 곳곳에 “포르투갈에서 4,8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가톨릭 교회에 학대당했다”는 문구가 담긴 광고를 게시하며, 이번 대회의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해 가능성까지 우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사가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청년대회는 수많은 청년들과 성직자들이 교류하는 자리로, 적절한 관리와 책임 의식이 없다면 부적절한 권력 관계와 신뢰를 악용한 또 다른 피해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교회 내 성 학대 문제의 핵심은 구조적인 권력 남용과 그 은폐에 있습니다. 대규모 행사는 이러한 문제를 오히려 더 쉽게 드러내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태도, 청년들에게 잘못된 메시지 전달

교회의 성 학대 문제에 대한 대응이 여전히 미흡한 상황에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청년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우려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축제는 가능하다”는 암묵적 메시지는 교회의 책임 회피 태도를 정당화할 수 있으며, 이는 피해자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청년들의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지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잘못을 덮으려는 축제가 아니라,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려는 진정성 있는 행동입니다.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다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적 개혁을 실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세계청년대회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할 위험을 안는 무책임한 행위일 뿐입니다.

 

포르투갈 가톨릭,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 4815명…“빙산의 일각” 포르투갈의 가톨릭 주교회의 대표인 호세 오르넬라스 주교(가운데)가 13일(현지시각) 리스본에서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리스본/AP 연합뉴스 사진출처: https://www.hani.co.kr/